부모님 병원비는 무조건 부모님 카드로 결제해야 한다는 말을 그대로 따르신 분들을 자주 만납니다. 정작 그 댁은 상속세가 한 푼도 나오지 않는 규모였던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반대로 상속세가 억대로 나오는 댁에서 자녀분이 무심코 본인 카드로 몇 년간 병원비를 결제해 온 경우도 있습니다. 이쪽이 더 아픕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무조건 누구 카드라는 공식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상속재산 규모가 얼마인지, 병원비가 정산된 상태인지, 실제로 누구 돈이 나갔는지에 따라 적용되는 제도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조세심판원 결정과 법원 판결을 근거로 각 경우에 무엇이 인정되고 무엇이 인정되지 않는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채무공제란 무엇인가요
채무공제는 돌아가신 분이 남긴 빚을 상속재산에서 빼 주는 제도입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4조 제1항은 상속개시일 현재 피상속인이나 상속재산에 관련된 공과금, 장례비용, 채무를 상속재산의 가액에서 빼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상속인이 물려받는 것은 재산만이 아니라 갚아야 할 빚까지 함께이므로, 실제로 손에 남는 순재산에만 과세하겠다는 취지입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단어가 상속개시일 현재입니다. 조세심판원과 법원은 상속재산에서 공제되는 채무를 상속개시 당시 피상속인이 종국적으로 부담하여 이행하여야 할 것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는 채무로 보고 있고, 그 존재를 입증할 책임은 납세자에게 있다고 봅니다(대법원 2003두9886, 2004년 9월 24일 선고). 이 한 문장이 병원비 처리의 갈림길을 만듭니다.
자녀가 대신 낸 병원비는 채무로 인정되나요
어차피 아버지 병원비니까 내가 냈어도 아버지 빚이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 결정례는 대부분 상속인 편이 아닙니다. 사망 전에 자녀가 자기 돈으로 결제해 버리면 그 순간 병원에 대한 채무는 소멸하고, 상속개시일에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조심2019전4213(2020년 3월 25일)은 모친이 2018년 사망하고 장남이 2008년부터 병원비와 간병비를 대납한 사안입니다. 조세심판원은 쟁점 지출액이 상속개시일 전에 지출되어 상속개시일 현재 피상속인의 채무로 존재하지 않는 점, 직계존비속 간 금전소비대차는 원칙적으로 인정하기 어려운데 차용증과 이자지급내역 등 객관적 증빙이 없는 점, 피상속인이 1979년부터 부동산임대업을 영위해 병원비를 부담할 자력이 있었던 점, 대납 행위가 자금대여보다는 민법상 직계혈족에 대한 부양의무 이행으로 보는 것이 사회통념에 부합하는 점을 들어 기각했습니다.
조심2020중1873(2021년 4월 7일)은 배우자 사안입니다. 2016년 6월부터 10월까지 청구인의 신용카드로 병원비를 결제했고 피상속인은 2018년 1월 사망했는데, 조세심판원은 배우자에 대한 부양 의무를 부부공동재산으로 이행한 것으로 보이는 점, 지출과 사망 사이 기간에 피상속인의 재산을 이용해 변제받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점, 채무부담계약서 등 증빙을 제출하지 않은 점을 들어 기각했습니다.
조심2023서9743(2024년 3월 20일)은 약 20년간 간병비와 병원비 등을 대납했다며 경정청구를 한 사안입니다. 간병인들의 영수확인서를 제출했으나 금융자료 등 객관적 증빙이 없고 간병인 개인의 소득세 신고내역도 확인되지 않았으며, 피상속인이 부동산임대업으로 자력이 있었던 점 등을 들어 역시 기각됐습니다.
인정된 사례는 어떤 경우인가요
대전고등법원 2022누12898(2023년 7월 6일, 1심 대전지방법원 2020구합666)은 결론이 달랐습니다. 피상속인은 2006년경 치매 진단을 받은 뒤 2008년 중증치매 3등급, 2016년 2등급, 2017년 1등급으로 악화됐고, 자녀들이 약 11년간 9,100여만원의 의료비와 간병비, 요양비를 대납했습니다.
법원의 논리는 세 단계입니다. 첫째, 피상속인이 22억원대 재산을 보유해 민법 제975조가 정한 요부양상태에 있지 않았으므로 자녀들에게 부양의무 자체가 발생하지 않았고, 따라서 그 지출을 부양의무 이행으로 볼 수 없다고 봤습니다. 둘째, 피상속인이 의사능력을 잃어 소비대차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불가능했던 사정을 감안하면 장래 피상속인의 재산에서 반환을 예정한 의사가 인정되므로, 자녀들은 제3자 변제로 인한 구상권과 민법 제739조에 따른 사무관리 비용상환청구권이라는 법정채권을 취득했다고 판단했습니다. 셋째,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 제10조 제1항 제2호가 열거한 채무부담계약서와 채권자확인서, 담보설정 및 이자지급에 관한 증빙은 예시규정으로 해석해야 하므로, 금융거래자료만으로도 채무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이 판단으로 당초 4,261만원이던 상속세가 594만원으로 줄었습니다.
인정과 부인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네 건을 겹쳐 놓으면 선이 보입니다. 첫째는 지출 시점입니다. 사망 전에 상속인이 결제해 버리면 원칙적으로 상속개시일 현재 채무가 없습니다. 둘째는 피상속인의 자력입니다. 임대소득이나 재산이 있어 스스로 낼 수 있었다면 자녀의 지출은 부양의무 이행이나 증여로 해석되기 쉽습니다. 다만 대전고법 사건에서는 이 논리가 뒤집혀, 재산이 많아 요부양상태가 아니었으니 애초에 부양의무가 성립하지 않는다고 봤습니다. 자력이 있다는 사실이 과세관청 논리로도 납세자 논리로도 쓰인 셈입니다. 셋째는 의사능력입니다. 차용증을 쓰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사정이 증명되어야 증빙 요건이 완화됩니다. 넷째는 정산 의사입니다. 상속인들이 부동산을 팔아 병원비를 정산한다는 합의서를 남기고 실제로 처분 대금으로 정산한 사실이 인정된 점이 결정적이었습니다.
실무상 가장 중요한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대전지법 판결문의 처분 경위를 보면 과세관청이 직권으로 사망 후에 지출한 병원비만 따로 골라 채무에 산입해 감액경정했고, 대전고법 사건에서도 사망 당시 남아 있던 병원비 1,517만원은 과세관청이 스스로 공제해 주었습니다. 사망 시점에 미지급으로 남아 있던 병원비는 다툼 없이 채무로 인정된다는 뜻입니다. 1심 법원은 사망 후 지출은 채무로 보면서 사망 전 지출은 증여로 보는 것이 선뜻 납득하기 어렵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상속인이 결제하면 무엇을 받을 수 있나요
채무공제 쪽 문이 닫혀도 다른 문이 열립니다. 근로자인 자녀가 부모님 병원비를 부담했다면 연말정산에서 의료비 세액공제를 검토할 수 있습니다. 소득세법 제59조의4 제2항에 따라 총급여의 3퍼센트를 초과하는 의료비의 15퍼센트를 세액에서 빼 줍니다. 의료비 세액공제는 다른 공제와 달리 부양가족의 나이와 소득 요건을 따지지 않으므로, 부모님께 임대소득이 있어도 만 60세가 되지 않았어도 공제 자체는 가능합니다. 다만 생계를 같이 하는 부양가족이어야 하고, 직계존속은 주거 형편상 따로 살더라도 실제 부양하고 있다면 생계를 같이 하는 것으로 봅니다.
한도도 넉넉합니다. 일반 부양가족은 연 700만원이 한도지만 만 65세 이상이거나 장애인, 건강보험 산정특례 대상자는 한도 없이 전액이 공제 대상입니다. 오래 투병하신 경우라면 대부분 여기 해당하므로 병원비가 수천만원이어도 3퍼센트 초과분 전부를 공제 기초로 삼을 수 있습니다. 과세기간 중에 돌아가신 경우에도 소득세법 제53조에 따라 사망일 전날의 상황으로 판정하므로 그해 연말정산에서 공제받는 데 지장이 없습니다.
사업소득만 있는 분은 원래 대상이 아니지만 예외가 있습니다. 조세특례제한법 제122조의3은 성실사업자, 그리고 성실신고확인대상사업자로서 성실신고확인서를 제출한 사업자에게 의료비와 교육비 세액공제를 적용하도록 정하고 있습니다. 매년 6월에 성실신고확인서를 내면서도 사업자라서 의료비 공제와 무관하다고 알고 계신 경우가 의외로 많습니다.
금액으로 보면 얼마나 차이가 나나요
두 제도의 공제율을 나란히 놓으면 크기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상속세 세율은 과세표준 1억원 이하 10퍼센트에서 시작해 30억원 초과 50퍼센트까지 올라가고, 의료비 세액공제는 15퍼센트에 지방소득세를 더하면 16.5퍼센트입니다. 상속세 한계세율이 이 수치보다 낮은 구간에서는 채무공제로 줄어드는 금액이 의료비 세액공제액에 못 미칩니다.
병원비 2,000만원, 자녀는 총급여 6,000만원의 근로자, 부모님은 만 65세 이상이라고 놓고 보겠습니다. 상속재산이 4억원이라 일괄공제 5억원만으로도 상속세가 0원인 댁이라면 채무공제로 줄어드는 세금이 없습니다. 반면 자녀가 결제한 경우에는 2,000만원에서 총급여의 3퍼센트인 180만원을 뺀 1,820만원의 15퍼센트, 즉 273만원이 세액에서 빠집니다. 상속재산이 6억원이면 일괄공제 5억원을 빼고 과세표준 1억원, 산출세액 1,000만원인데 병원비 2,000만원을 채무로 공제하면 과세표준 8,000만원에 산출세액 800만원이 되어 줄어드는 세금은 200만원입니다. 자녀가 결제했을 때의 273만원보다 적으므로, 과세표준 1억원 이하 구간에서는 상속세 쪽 공제가 오히려 작아지는 셈입니다. 상속재산이 15억원이고 배우자와 자녀가 함께 상속받아 공제 10억원을 적용받으면 과세표준 5억원으로 세율 20퍼센트 구간이 되고, 병원비 2,000만원을 공제하면 상속세가 400만원 줄어듭니다. 이 구간부터는 상속세에서 빠지는 금액이 의료비 세액공제액을 넘어섭니다. 다만 같은 상속세 효과를 내는 경로가 하나가 아니어서 그 부분은 뒤에서 따로 보겠습니다.
카드로 결제하면 채무가 두 개가 되나요
피상속인 카드로 병원비를 결제했다면 병원에 대한 미지급 채무와 카드사에 대한 미결제 대금이 둘 다 남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카드로 결제하는 순간 카드사가 병원에 대금을 지급하므로 병원에 대한 채무는 소멸하고 카드사에 대한 채무가 새로 생깁니다. 채무의 상대방이 병원에서 카드사로 바뀌는 것이지 두 개가 나란히 남는 것이 아니어서, 상속개시일에 존재하는 채무는 언제나 둘 중 하나이고 금액도 같습니다. 병원 미납확인서와 카드 명세서를 모두 챙겨 두었다가 신고서에 각각 올리면 같은 금액을 두 번 빼는 결과가 되므로 신고 단계에서 어느 쪽으로 잡을지 정리하고 넘어가셔야 합니다.
타이밍에 따라 결과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상속재산 10억원에 병원비 2,000만원으로 놓고 보겠습니다. 미지급 상태로 사망하셨다면 상속재산 10억원에서 병원 채무 2,000만원을 빼 과세가액은 9억 8,000만원입니다. 피상속인 카드로 결제했지만 대금이 빠져나가기 전에 사망하셨다면 상속재산은 아직 10억원이고 카드사 채무 2,000만원을 빼서 역시 9억 8,000만원입니다. 카드대금까지 인출된 뒤 사망하셨다면 예금이 이미 줄어 상속재산이 9억 8,000만원이고 채무는 없습니다. 세 경우의 상속세가 모두 같습니다. 재산에서 빼든 채무로 빼든 이미 줄어든 상태로 두든 순재산 9억 8,000만원에 과세한다는 점에서 다르지 않으므로, 상속세만 놓고 결제 타이밍을 고민할 이유는 없습니다.
갈리는 것은 소득세 쪽 하나입니다. 세 경우 중 첫 번째, 즉 사망 시점에 미지급으로 남아 있던 병원비를 상속인이 나중에 자기 돈으로 정산한 경우에만 의료비 세액공제를 따져 볼 여지가 생깁니다. 나머지 둘은 피상속인이 결제한 것이라 그 길이 닫힙니다. 다만 이 조합을 두고 확립된 해석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채무공제와 의료비 세액공제는 세목도 요건도 다르고 이를 함께 적용하지 못하도록 막는 규정이나 해석은 확인되지 않지만, 반대로 명시적으로 허용한다고 밝힌 자료도 없습니다. 실제로 다투게 된다면 상속인이 그 돈을 정말로 부담했는지가 쟁점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상속받은 예금에서 나갔다면 형식은 상속인이 결제한 것이라도 실질은 피상속인 재산에서 나간 것이라는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고, 앞서 본 심판례들이 피상속인의 금전이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를 반복해서 든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미 자녀가 부담해 온 경우는 어떻게 되나요
몇 년째 자녀가 병원비를 대고 있는 댁이 실제로는 더 많습니다. 이 경우 채무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결정례가 무엇을 봤는지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보는 것은 지출한 돈이 정말 자녀 것이었는지입니다. 조심2019전4213과 조심2023서9743 모두 피상속인의 금전이 포함되어 있는지 여부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기각 이유로 들었습니다. 현금으로 오간 돈이나 간병인의 영수확인서만으로는 이 부분이 확인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대전고법 사건에서는 자녀 명의 계좌와 카드 내역이 그대로 남아 있었고 법원은 이 금융거래자료를 채무 증명 수단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다음은 차용의 흔적입니다. 직계존비속 사이의 금전소비대차는 원칙적으로 인정되지 않으므로 차용증과 이자 지급 내역이 있으면 판단이 달라질 여지가 생깁니다. 다만 피상속인이 의사능력을 잃은 뒤라면 차용증 자체를 만들 수 없는데, 대전고법은 바로 그 사정을 인정해 시행령의 증빙 목록을 예시로 해석했습니다. 그런 사안에서는 진료소견서와 요양등급 판정 자료가 의사능력 결여를 뒷받침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마지막은 정산 여부입니다. 대전고법 사건의 상속인들은 부동산을 팔아 병원비를 정산한다는 합의서를 남겼고 실제로 처분 대금으로 정산했습니다. 법원은 이를 두고 종국적으로 자기가 부담할 의사가 아니었다는 근거로 삼았습니다. 반대로 정산 흔적이 없으면 부양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세 가지를 뒤집어 보면 왜 대부분 부인되는지가 보입니다. 현금으로 지출하고 차용증도 없고 정산도 하지 않은 상태가 가장 흔하기 때문입니다.
장례비는 누가 결제해야 하나요
장례비는 병원비와 구조 자체가 다릅니다. 채무공제는 상속개시일 현재 피상속인의 확정된 채무일 것을 요구하고 시행령 제10조가 입증방법까지 따로 정하고 있지만, 장례비용은 상속세 및 증여세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이 장례에 직접 소요된 금액이라고만 할 뿐 누가 지출했는지를 묻지 않습니다. 애초에 사망 후에 쓰는 돈이라 피상속인이 결제할 방법이 없으니 당연한 일입니다. 상속개시 후의 비용인데도 법이 예외적으로 공제를 인정해 준 항목이고, 따라서 상속세에서 빠지는 장례비용 공제액은 누가 결제하든 동일합니다.
공제 구조는 두 갈래입니다. 봉안시설과 자연장지를 제외한 장례에 직접 쓴 금액은 실제 지출액이 500만원에 못 미쳐도 500만원까지는 증빙 없이 공제되고 1,000만원을 넘더라도 1,000만원까지만 인정됩니다. 봉안시설이나 자연장지 사용료는 이와 별도로 500만원 한도에서 추가 공제되므로 합치면 최대 1,500만원이 상속재산에서 빠집니다.
차이는 소득세 쪽에서만 생깁니다.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 제121조의2 제6항은 신용카드 사용금액에서 빼는 항목으로 보험료, 수업료와 보육비용, 국세와 지방세, 공과금, 아파트관리비, 상품권, 리스료, 취득세 대상 재산 구입비 등을 열거하고 있는데 장례비는 여기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장례식장과 상조회사는 사업자이므로 근로자인 상속인이 본인 카드로 결제했다면 신용카드 등 사용금액 소득공제 대상에 들어가는 구조입니다. 다만 같은 항 제8호는 국가나 지방자치단체에 지급하는 사용료와 수수료를 제외하고 있고 그 예외 업종에 장례식장 운영업이 없으므로,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공설 장례식장이나 공설 봉안시설에 낸 돈은 제외될 수 있습니다. 사설 장례식장과 병원 장례식장, 사설 봉안당은 이 문제가 없습니다.
효과가 크지는 않습니다.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총급여의 25퍼센트를 넘는 금액부터 적용되고 한도도 있어서 이미 한도를 채운 상태라면 추가되는 것이 없고, 공제율도 신용카드 15퍼센트와 체크카드 및 현금영수증 30퍼센트로 갈립니다. 500만원 이하 구간이라면 증빙 없이도 상속세에서 공제되므로 결제 주체를 따질 실익이 애초에 없습니다.
정작 공제액을 좌우하는 것은 결제 주체가 아니라 증빙과 범위입니다. 500만원을 넘겨 쓴 경우 영수증이 있어야 1,000만원까지 인정되고 봉안시설은 계약서가 있어야 별도 한도가 적용됩니다. 상속세 및 증여세법 집행기준 14-9-2는 시신의 발굴 및 안치에 직접 소요되는 비용과 함께 묘지구입비, 공원묘지 사용료, 비석, 상석까지 장례비용에 포함하고 있으므로 매장을 하신 경우 묘지 관련 비용도 함께 챙기셔야 합니다. 반면 49재처럼 장례가 끝난 뒤의 제사 비용은 제외되고, 피상속인이 비거주자인 경우에는 장례비 공제 자체가 없습니다.
놓치기 쉬운 주의점은 무엇인가요
형제가 나눠 냈다면 각자 공제되지 않습니다. 의료비 세액공제는 부모님을 기본공제 대상자로 올린 한 사람에게만 허용되므로, 삼남매가 3분의 1씩 부담했더라도 기본공제를 받는 한 명의 지출분만 공제 대상이 됩니다. 나머지 두 사람이 낸 돈은 어느 쪽에서도 공제되지 않고 사라지는 셈입니다.
부모님 카드로 결제한 경우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가족의 카드 사용액을 근로자가 자기 신용카드 소득공제에 넣으려면 그 가족의 연간소득금액이 100만원 이하여야 합니다(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 제121조의2 제3항). 의료비 세액공제는 나이도 소득도 따지지 않는데 신용카드 소득공제는 소득요건이 살아 있는 것입니다. 부모님께 임대소득이 있다면 부모님 카드로 결제했으니 카드공제라도 받자는 계획이 이 지점에서 막힙니다.
실손보험금을 받았다면 그만큼 빼야 합니다. 보험사에서 보전받은 금액은 본인이 부담한 의료비가 아니므로 공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이를 빼지 않고 신고했다가 과다공제로 가산세까지 부담하는 사례가 매년 반복됩니다. 간병비는 세목마다 취급이 다릅니다. 연말정산에서는 개인적으로 고용한 간병인에게 지급한 돈이 의료비 세액공제 대상이 아니지만, 요양병원 입원비와 노인장기요양보험법에 따른 본인일부부담금은 대상에 들어갑니다. 반면 상속세 채무공제에서는 대전고법 사건처럼 간병비도 채무로 인정된 사례가 있습니다.
끝으로 채무공제와 의료비 세액공제를 함께 적용하는 문제는 앞에서 본 대로입니다. 사망 시점에 미지급이던 병원비를 상속인이 자기 돈으로 정산한 경우라면 두 제도의 요건이 각각 충족되지만 이를 확인해 준 해석은 없습니다. 다투게 된다면 그 돈이 상속받은 재산에서 나갔는지 상속인의 고유재산에서 나갔는지가 갈림길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병원 채무와 카드 채무는 같은 금액을 두 번 올리는 순간 과다계상이 됩니다. 미납확인서와 카드 명세서가 모두 손에 있으면 실수하기 쉬운 지점입니다.
- 근거 -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4조 제1항(공과금, 장례비용, 채무), 같은 법 시행령 제9조 제2항(장례비용의 범위), 제10조 제1항(채무의 입증방법)
- 채무 요건 - 상속개시 당시 피상속인이 종국적으로 부담하여 이행하여야 할 것이 확실하다고 인정되는 채무여야 하고 입증책임은 납세자에게 있음(대법원 2003두9886)
- 사망 전 상속인 대납 - 상속개시일 현재 채무로 존재하지 않고 직계존비속 간 금전소비대차도 원칙적으로 불인정되어 대체로 부인(조심2019전4213, 조심2020중1873, 조심2023서9743)
- 인정된 예외 - 피상속인이 요부양상태가 아니었고 중증치매로 의사능력이 결여되어 계약이 불가능했던 사안에서 제3자 변제 구상권과 민법 제739조 사무관리 비용상환청구권을 인정, 시행령상 증빙 목록은 예시로 보아 금융거래자료로 증명 가능(대전고법 2022누12898, 1심 대전지법 2020구합666)
- 사망 시 미지급분 - 상속개시일 현재 남아 있는 병원비는 과세관청도 채무로 인정
- 카드 결제의 효과 - 카드 결제 시 병원 채무가 소멸하고 카드사 채무가 발생하므로 두 채무가 병존하지 않음. 미지급 상태, 카드 결제 후 대금 인출 전, 대금 인출 후 어느 경우든 상속세 과세가액은 동일하고 의료비 세액공제 가능 여부만 달라짐
- 채무공제와 의료비 세액공제의 병존 - 사망 시 미지급분을 상속인이 자기 자금으로 정산하면 두 제도의 요건이 각각 충족되나 이를 확인한 해석은 없음. 상속받은 재산으로 갚은 경우 상속인의 부담으로 보기 어려울 수 있음
- 의료비 세액공제 - 총급여 3퍼센트 초과분의 15퍼센트, 나이와 소득 요건 없음, 65세 이상 및 장애인, 건강보험 산정특례자는 한도 없음, 과세기간 중 사망 시 사망일 전날 기준 판정(소득세법 제59조의4 제2항, 제53조)
- 사업자 - 성실사업자 및 성실신고확인서를 제출한 성실신고확인대상사업자는 의료비와 교육비 세액공제 적용(조세특례제한법 제122조의3)
- 장례비용 - 지출 주체 요건 없음, 봉안시설 및 자연장지 제외 금액은 500만원까지 무증빙 공제하고 1,000만원 한도, 봉안시설과 자연장지는 별도 500만원 한도, 합계 최대 1,500만원, 묘지구입비와 공원묘지 사용료, 비석, 상석 포함(집행기준 14-9-2), 49재 등 장례 종료 후 비용과 비거주자는 제외
- 신용카드 소득공제 - 장례비는 제외 항목에 열거되어 있지 않으나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에 지급하는 사용료는 제외 대상이므로 공설 장례식장 및 공설 봉안시설은 확인 필요, 가족 카드 사용액을 합산하려면 그 가족의 연간소득금액 100만원 이하 요건 충족(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 제121조의2 제3항, 제6항)
정리하면
병원비는 상속세가 나오지 않는 댁에서 채무공제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 댁이라면 근로자나 성실사업자인 상속인이 부담한 경우에 의료비 세액공제가 남고, 그마저도 실제로 그 사람이 지출했을 때의 이야기입니다. 상속세가 나오는 댁에서는 상속세 자체가 결제 방식으로 달라지지 않습니다. 미지급으로 두든 카드로 결제했든 대금이 이미 빠져나갔든 순재산에 매기는 것은 같기 때문입니다. 갈리는 것은 의료비 세액공제가 열려 있느냐 닫혀 있느냐 하나뿐이고 그것도 확립된 해석이 있는 영역은 아니며, 자녀가 생전에 자기 돈으로 결제한 경우에는 채무공제가 부인된 결정례가 반복되고 있습니다. 장례비는 구조가 아예 다릅니다. 시행령이 지출 주체를 묻지 않기 때문에 누가 결제하든 최대 1,500만원까지 상속재산에서 빠지고, 근로자인 상속인이 본인 카드로 냈다면 신용카드 소득공제 대상에도 들어갑니다. 무조건 누구 카드로 해야 한다는 말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이 오늘의 요지입니다. 상속재산 규모가 얼마인지, 지금 병원비가 정산된 상태인지, 실제로 누구 돈이 나갔는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